[르포] 수마 상흔 1년…컨테이너서 폭염 견디는 양정마을 수재민들

기사승인 2021. 07.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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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더위 속 컨테이너 생활 버티기 한계
"섬진강댐 관리 소홀"vs "자연재해"…책임 줄다리기
최종 결과 보고서 나왔지만 논란 여전
전문가 "농업용 저수지 정비, 선진 하천 정비 도입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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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 수해 피해 주민들이 무더위를 피해 컨테이너 앞 그늘에 모여 있다./사진 = 권한일 기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죠. 몇 달이면 될 줄 알았는데, 한 해를 버텼어요.”

찌는 듯한 더위에 체감 온도가 38도를 넘나들던 지난 27일. 전라남도 구례군 양정마을에 늘어선 컨테이너에서 만난 허양자씨(79)는 연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컨테이너) 들어가면 몸이 푹 익는 거 같아. 이게 무슨 사람 사는 거야 이게”

뙤약볕에 달아오른 7평 남짓 컨테이너는 불가마를 방불케 했다. 에어컨도 무용지물이라는 하소연이 체감됐다. 허 씨는 시시각각 변하는 그늘 자리를 찾아다니느라 지쳐 있었다.

지난해 여름, 기록적인 장마와 집중호우로 구례를 비롯해 남원·하동 등 섬진강 하류 지역은 사상 초유의 홍수 피해를 입었다.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채 컨테이너 생활을 시작했다. 몇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임시 거처 생활은 어느덧 1년째 이어지고 있다.

양정마을에 있는 15채를 비롯해 공설운동장과 농악연습장 등 구례에만 총 50여 채의 컨테이너가 주민 거처로 사용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한 동에 가족 서너 명이 함께 생활하는 등 큰 불편을 겪고 있었다.

지난해 9월 지급된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은 이들의 터전을 복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주민들에 지급된 사유시설 관련 지원액은 구례군 기준 총 65억원. 이는 자체 손해사정으로 집계한 피해 산정액의 약 5% 수준이다. 주택복구비의 경우 전파 시 1600만원, 반파 시 800만원, 침수 시 200만원이 나왔다. 그마저도 토지와 건물 소유, 등록 여부를 따진 뒤 직접 주거용 집에 한해 지급됐다.

정부는 홍수 원인 규명과 추가 보상을 약속했지만, 주민대표와 지방자치단체, 관련 부처 간 의견이 맞서면서 이렇다 할 추가 보상은 나오지 않았다. 당장 생계가 급했던 주민들은 스스로 농장과 상점을 복구에 나섰다.

주민 안재민씨(71)는 “수해 후 농장 복구에 그동안 모아둔 쌈짓돈과 은행 대출을 이용했다. 이 마을주민 상당수가 나처럼 빚을 떠안고 하루하루 버티는 형편”이라고 읍소했다. 안 씨는 수해 후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매일 밤 우울증약 복용 없이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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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발생한 섬진강 홍수로 침수 피해를 입은 농장과 민가 모습/제공 = 양정마을
◇댐 관리 부실과 자연재해... 첨예한 대립
홍수 발생 후 원인을 둘러싼 주장은 엇갈렸다. 댐 관리를 지적한 주민과 ‘불가항력이었다’는 홍수통제소 간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면서 원인 규명과 보상 절차도 난관에 봉착했다. 섬진강 하류에 몰린 수해 지역 주민들은 상류 섬진강댐의 장마철 수위조절 실패와 긴급방류를 홍수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하고 관리 주체인 한국수자원공사에 보상을 요구해왔다.

실제 지난해 홍수 발생 한 달여 전인 7월 1일부터 12일까지 섬진강댐 저수율은 평균 39.3%였다. 이후 수위가 급상승하기 시작해 7월 30일 87.1%로 치솟았다. 이날 수위는 195.91m로 홍수기 제한 수위(196.5m)에 육박했다.
섬진강댐 자료
지난해 8월 섬진강댐 자료. 섬진강 일대에 집중호우가 내린 8월 7일부터 댐 저수율과 방류량이 크게 늘었다./출처 = 영산강홍수통제소
8월 7일부터 이틀 새 섬진강 일대에 500㎜가 넘는 폭우가 내렸고 저수율은 7일 84.1%, 8일 95.3%로 급상승했다. 8일에는 홍수기 제한 수위를 넘어 197.42m에 이르렀다. 이에 방류량도 급증했다. 폭우 전 사흘간 하루 평균 150.48톤이 방류됐지만 7일 328톤을 시작으로 8일 1396톤, 9일 1223톤 등 방류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평소의 10배 가까운 물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다.

반면 환경부를 비롯해 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 등은 당시 이례적인 집중호우로 하천제방이 약해졌고 지류 하천 관리에도 문제가 발생하면서 홍수에 직·간접적인 요인이 된 만큼 댐 방류만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영산강홍수통제소와 한국수자원공사 측은 “최대 200㎜라는 기상청 예보를 토대로 수위를 조절했지만 이틀 동안 500㎜가 넘은 폭우가 쏟아졌고 섬진강댐 유입량이 2000톤까지 불어나 부득이하게 방류량을 늘렸다”며 “하천 설계는 100~200년간 통계적 빈도를 기준으로 하는데 500년 만의 기록적인 강수로 하천에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섬진강 특유의 지형·지질이 홍수를 키웠다는 견해도 있다. 이삼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섬진강 유역은 시생대 편마암과 중생대 화강암 등 단단한 암반으로 구성돼 토사 생산량이 적고 강 전반에 걸쳐 V자형 계곡 모습을 띤다”며 “섬진강은 짧은 분지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 경사가 급해 홍수 시, 강한 물살로 강바닥에 토사가 쌓이지 않고 깎인다. 구례·하동 등 계곡 하류 지역은 금세 물이 차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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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댐 방류 모습. 홍수 피해 주민들은 지난해 8월 섬진강 유역에서 발생한 대홍수의 원인을 이 댐의 방류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제공= K-water 섬진강댐지사

◇배상과 보상 사이...‘구제’?
양측이 서로 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가자 지난해 10월, 정부·지자체 추천 전문가와 주민대표 등 21인으로 구성된 ‘섬진강댐 하류 수해 원인 조사협의회’가 출범했다.

협의회는 당초 올 상반기 내 조사용역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수자원학회 조사위원 2명이 의견 충돌로 자진 사퇴하는 등 굴곡을 겪다 지난 26일 지난해 섬진강 유역 수해는 ‘인재(人災)’가 아니라고 결론 지었다. 협의회는 “지난해 섬진강 하류에 역대급 폭우와 섬진강댐의 홍수 조절 용량 부족, 하천 관리 부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발표와 동시에 피해 주민들의 크게 반발했다. 결과적으로 정확한 원인 제공자나 수해 원인을 지목하지 못해 그 누구의 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주민대표단은 “최종 용역보고서는 특정 기관(한국수자원공사·홍수통제소)이나 사람의 과실은 없고 기존 시스템이 문제라는 식”이라며 “중간보고서와 달리 주요 원인이 빠진 채 막연한 복합요인으로 표기하고 책임 주체에 대해 직·간접적 원인 제공으로 기술한 맹탕 보고서”라고 질타했다.

실제 최종 보고서는 중간보고서보다 책임 주체가 불분명해졌다. 앞서 중간 보고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한국수자원공사가 홍수피해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라고 명시한 바 있다. 이어 기술·사회·재정적 요인이 복합 작용했고 환경부, 수자원공사의 댐 홍수 지침 미흡과 제방 설계기준 미달 등도 직접 요인이라는 포괄적인 내용이 담겼었다.

한편 용역보고서에 담긴 ‘구제’ 표현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천재지변은 국가가 ‘보상’해야 하고 인재나 관재는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 중간보고서에 이어 결과 보고서에서도 ‘구제’로 표현된 만큼 지난해 대홍수는 인재가 보다 자연재해에 가깝다고 용역 기관이 못 박았다는 해석이다.
구례읍사무소
27일 구례읍사무소에 마련된 환경분쟁조정 신청 창구 모습. 구례군은 이달 말까지 신청 마감 후 내달초 접수할 계획이다./사진 = 권한일 기자
이와 별개로 지난 용역 중간 보고서에서 댐 운영 문제와 하천 관리 부실로 인한 홍수였다는 기존 주민들의 주장이 상당 부분 반영된 후 환경 분쟁 조정신청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번 환경분쟁 조정에는 지난해 구례군 수해 손실액 산정용역에 참여한 지역 주민 1892명이 신청 대상이다. 이미 산정된 민간 피해액만 1097억원에 이른다. 구례군 측은 이달 말 주민 신청을 완료하고 내달 초 환경분쟁 조정에 들어갈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홍수 방지를 위해 지방 하천 준설 및 제방 보강은 물론 △중소형 농업용 저수지 재정비 △선진형 하천 정비 기법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김진수 충북대 지역건설공학과 교수는 “저수용량이 100만톤 이상인 중형 농업 저수지는 지류 홍수 완화 기능을 할 수 있다. 농업용 저수지는 여름철 저수용량의 약 80%를 제한 수위로 설정하는 만큼 홍수위와 홍수기 제한 수위 사이 공간에 홍수 조절 용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50만톤급 저수지의 담수 능력을 확대해 홍수 조절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삼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섬진강은 역류 막이용 배수장, 개방형 홍수 조절지(습지), 곡성 분지 내 방수로, 본류 제방 붕괴 대비용 보조 제방과 수방림 조성이 필요하다”며 “이상기후를 고려하고 하천별 조건을 감안해 창의적 수방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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