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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마음, 詩로 읽고 寫眞으로 보다! <숙종 1>

임금의 마음, 詩로 읽고 寫眞으로 보다! <숙종 1>

기사승인 2021. 10. 24.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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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창경궁 통명전의 지붕과 추녀마루에 놓인 용두(龍頭)와 잡상(雜像).
<숙종>
1. 무제
否德承丕基 덕이 적은 몸으로 나라를 이어받아
于今卄九稔 지금까지 29년이 되었구나
歲連痒稼穡 해마다 농사는 가뭄에 흉년이라
民屢奪餬飪 백성은 죽도 먹지 못하는구나
國事維其棘 나라의 정사는 위급하고
天災日又甚 자연의 재해는 날마다 심해지네
休提稱慶說 잔치를 하자는 말 꺼내지도 말라
但自夙宵懍 밤낮으로 몸가짐과 언행을 삼가야 하네

숙종
경복궁 교태전 마루에서 바라다본 강녕전의 지붕.
<해설>
현종과 명성왕후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숙종은 당쟁이 가장 심했던 시기에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아버지 현종이 33세로 승하하자 14세였던 왕세자는 1674년 음력 8월, 명성왕후의 도움을 받아 19대 숙종으로 즉위하였다. 그 후 재위 46년 동안 왕권을 강화하고 민생 안정에 주력하였다. 숙종은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지만, 명성왕후로부터 수렴청정을 받지 않았고 자신이 직접 쇠약해진 조선을 친정하였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그리고 병자호란 등 외세의 침략 속에 거의 폐허가 된 조선에 새로운 희망을 줘야 하는 사명이 어린 왕에게 주어졌다. 숙종은 전쟁 후 사회 혼란을 수습하고 민생을 안정시켜 조선 사회가 다시 도약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영조라는 걸출한 아들로 하여금 조선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이 시는 1705년(숙종 30) 음력 2월 6일에 지은 것으로, 여러 해 동안 자연재해가 심해지자 굶주리고, 생활이 곤궁해진 백성들에 대한 애민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마치 자연재해가 자신의 부덕함으로 여긴 숙종은 왕위에 있는 그 자체로 선왕들을 욕되게 하고, 하늘을 진노하게 하여 기근이 거듭된다고 생각했다. 반면, 조정은 남인과 서인의 붕당정치로 인해 화합 대신 갈등과 반목이 심해지고, 나라의 기강이 말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어둑한 방 안에 홀로 앉아 근심하고 있는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글로 남겼다.
글/사진 이태훈. 에디터 박성일기자 rnopark99@as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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