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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 가는 봄날

[이효성의 자연에세이] 가는 봄날

기사승인 2022. 05. 2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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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어느 계절이건 왔다가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로 계절이 왔다 가는 것에는 별 감흥이 없다. 사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잘 인지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유독 봄이 왔다 가는 것은 잘 느끼고 많은 감흥을 보인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라는 노랫말을 가진 가요 〈봄날은 간다〉[손노원 시, 박시춘 곡]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많은 가수들에 의해 불린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같은 제목의 다른 시인들의 시도 적지 않다. 봄이 가는 것은 그만큼 특수한 감흥을 일으키는 일이다.

과거 의식주가 발달하지 못했던 때의 겨울은 그 추위 때문에 견디기도 어렵고 목숨마저 위태로울 수 있었다. 의식주가 발달한 오늘날에도 겨울은 여전히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계절이다. 그래서 겨울에는 그런 염려가 없는 따뜻한 봄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우리는 대체로 봄 이외의 다른 계절은 기다리지 않는다. 겨울은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춥기에, 여름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무덥기에, 가을은 선선하고 좋은 계절이지만 여름에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기에,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겨울의 추위 속에서는 목숨이 안전한 따뜻한 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봄은 언제나 기다려 맞는 계절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봄이 온다면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가움은 잠시뿐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봄도 금세 가버리기 때문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기에 그에 따라 어떤 계절이든 일단 오고 나면 어느덧 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추위의 위험과 속박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기다려왔던 봄이기에 그것이 가버리는 일은 그만큼 빠르게 느껴지고 더 아쉽고 안타까운 일로 인식되는 것이다. 우리의 한 시인은 “날은 빠르다 / 봄은 간다”[김억, 〈봄은 간다〉 중에서]고 탄식했다.

봄은 꽃으로 시작되고 꽃은 봄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꽃이 피면 봄이고 꽃이 지면 봄도 끝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사실이기도 하다. 화사한 꽃들이 피고 지는 사이에 봄날도 가버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꽃이 지면서 기다려 맞았던 봄도 가버린다는 것은 그만큼 더 아쉬운 일이다. 시인 김영랑이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모란이 피기까지는〉 중에서]라고 안타까워한 것처럼. 그래서 그에게 봄은 “찬란한 슬픔”이었다.

시간의 속도는 누구에게나 동일하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고, 반대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고 한다. 이는 동일한 길이의 시간 동안의 활동량이 나이가 들수록 대체로 적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이가 적을수록 활동량이 많고, 나이가 많을수록 활동량이 적다. 따라서 나이가 많을수록 봄날이 더 짧고 더 빨리 지나가버리는 것으로 인식되기에 아쉬운 마음도 더 클 것이다.

더구나 봄날은 청춘의 은유이기에 봄날이 간다는 것은 청춘이라는 화려한 시절이 지나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화려한 봄날 속에 이런 슬픔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사철에 비유한 〈사철가〉라는 판소리 단가는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라며 이어진 여름, 가을, 겨울도, 즉 나이가 들어가도, 나름대로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있으니 그것을 받아들이고 언제든 기꺼워하라고 권한다.

그렇다. 봄날이 가는 것은 아쉽지만 그리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여름, 가을, 겨울도 다 나름대로 멋과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피할 수 없듯, 청춘도 가고 나이가 들어 늙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과정이다. 그것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쁨으로 맞고 가능한 한 즐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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