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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영혼을 울리는 청명한 날씨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영혼을 울리는 청명한 날씨

기사승인 2021. 09. 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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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연중 가장 청명한 날씨는 9월 후반부터 10월 초반까지의 무렵일 것이다. 그런데 24절기 명칭 가운데 ‘청명’(淸明, 4월 4~5일)은 9월이나 10월에 있지 않고 4월 초순에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청명 절기가 있는 4월에도 날씨가 대체로 온화하고 청명한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청명 어간에 잎도 없는 나무에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 세상이 온통 울긋불긋한 꽃동산 같은 모습은 청명이라는 절기 명칭에 잘 어울리는 모습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이때는 봄이라서 날씨가 변덕스럽고 가끔은 꽃샘추위도 있고 황사도 날아와서 을씨년스럽기도 하여 도저히 청명하다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9월 후반과 10월 초반의 시기는 날씨가 변덕스럽지도 않고, “산들바람이 산들 분다”는 정인섭 시 현재명 곡의 가곡 〈산들바람〉의 한 구절처럼, 대기는 늘 선선하고 하늘은 푸른 가운데 그야말로 청명하기 그지없는 날씨가 전개된다.

‘백로’(白露, 9월 7~8일) 무렵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구름조차 거의 없는 높고 푸른 하늘이 ‘추분’(秋分, 9월 23~24일)에는 더욱더 높고 푸르러진다. 여느 때 볼 수 없는 그런 변화를 감지하게 되면 도대체 가을 하늘이 얼마나 더 푸르러지고 높아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호기심도 생긴다. 또한 그 한없이 맑디맑고 푸르디푸른 모습에 경건한 마음이 일기도 한다. 이처럼 가을은 “손톱으로 튀기면 쨍하고 금이 갈 듯 / 새파랗게 고인 물이 만지면 출렁일 듯”한 “청정무구(淸淨無垢)”[이희승, <벽공(碧空)> 중에서]의 높고 푸른 하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게다가 이 무렵 나날이 바람은 더 선선하고 삽상해지며, 대기는 습기가 완전히 가시면서 건조해져 미세한 소리도 더 잘 들리고, 조석으로는 서늘한 기운이 스미게 된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 무렵의 대기는 갈수록 청량감을 더해가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정신은 더 맑아지고, 풀벌레들의 약한 소리도 뚜렷하게 귓전을 스친다. 그리하여 추분 무렵부터 높고 맑은 하늘 아래 삽상한 대기와 함께 연중 가장 맑고 밝은 날씨, 즉 청명한 날씨가 이어진다. 이 무렵은 들판에서는 오곡백과가 익어 먹을 것이 풍부하여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이른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기도 하다.

이 무렵은 연중 날씨가 가장 청명하고 기분이 상쾌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이때는 들판 어디서나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고, 무르익은 오곡백과와 들국화의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고, 풀밭에서는 귀뚜라미의 처량한 소리와 콩깍지가 건조한 바람에 말라 툭툭 터지는 경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이른 아침이라면 풀잎에 맺혀 있는, 구슬같이 둥글고 맑은 이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때의 가을은 맑은 이슬, 높푸른 하늘, 처량한 벌레 소리, 선선한 바람, 은은한 향기 등의 청명함으로 우리의 온 몸을 자극한다.

이처럼 이 무렵은 연중 가장 청명한 날들이 이어지는 철이고 대기에서 청명함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시절이다. 이때가 연중 가장 맑고 선선한 산들바람이 불고, 드높은 하늘이 바다처럼 푸르고, 습기가 가셔 산뜻한 대기는 우리의 오관에 청량한 느낌을 준다. 따라서 이 무렵은 상쾌한 기분과 함께 영혼이 맑아지는 때이기도 하다. 어쩌면 ‘청명’이라는 절기 명칭이 이 무렵에 있었더라면 더 적절했을 것이다. 이 무렵은 초가을이라는 계절적 특성으로 인하여 연중 날씨가 가장 청명한 계절인 것이다.

이 청명한 계절을 만끽해보자. 그러려면 아무래도 야외로 나가 머리 위로 높푸른 하늘을 이고, 온 몸으로 선선하고 가슬가슬한 바람을 맞으며, 한들거리는 길가의 코스모스와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들판의 벼를 동무 삼아, 심금을 울리는 처량한 귀뚜라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래서 까닭 모를 우수와 비애에 젖어 영혼의 울림도 경험해보자. 그것이 이 청명한 시기에 어울리는 일이 아닐까! 그로써 우리가 좀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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