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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 눈의 정서

[이효성의 자연에세이] 눈의 정서

기사승인 2021. 12. 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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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눈이 오기 위해서는 높은 하늘에 떠 있는 물방울들이 얼어야 하기에 기온이 0℃ 이하로 내려가야 한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가장 추운 곳은 대관령이다. 따라서 대관령은 한국에서 첫눈이 가장 자주 오고, 가장 눈이 많이 오는 곳이다. 대관령에서 첫눈은 대체로 11월 중순이나 하순이다. 그러나 서울이 있는 중부 지방의 첫눈은 대체로 11월 하순경이다. 그러나 중부 지방에서의 첫눈은 흔히 제대로 쌓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남한에서, 특히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에서 제대로 쌓인 눈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아무래도 12월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부 지방에서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기에 눈이 내려도 수북이 쌓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중부 지방에서 수북이 쌓이는 경우는 한겨울을 통틀어 두세 번에 불과하다. 특히 근래에는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눈이 적게 내린다. 한국에서 눈이 내려 수북이 쌓이는 곳은 강원도의 산간 지역과 호남의 해안 지역이다.

그런데 눈은 매우, 어쩌면 가장, 정서적인 물상이다. 눈은 아무런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 그저 그런 물상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어떤 특정한 감흥을 일으키고 그것을 나타내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첫눈은 특히 더 그러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고, 첫눈이 오면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눈이 온다!”고 외치며 실내에 있던 사람들은 일부러 밖으로 나와 눈을 반기며 맞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첫눈이 오면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를 갖게 된다. 첫눈은 흔히 서설(瑞雪, 상서로운 눈)로 간주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눈이 올 때 많은 이들이 반가운 나머지 연인이나 가까운 친지에게 그 소식을 전한다. 그만큼 눈은 중요한 뉴스이고 사건인 것이다. 실제로 눈이 오면 데이트를 약속하는 연인들도 많다. 눈은 많은 이들을 마냥 설레게 하거나 기쁘게 한다. 또 많은 이들이 눈이 오면 어린 시절을 비롯하여 까마득히 잊었던 추억이나 일이나 이들을 떠올리고 그리움에 빠지기도 한다. 그만큼 눈은 사람들에게 강한 감성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정서적인 물상인 것이다.

눈은 저 높은 곳으로부터 “선녀의 날개옷 / 빌려 입고 / 흰나비 떼 되어 / 춤추며 내려”[최범서, 〈함박눈〉 중에서] 온다. 눈은 고체임에도 얼굴에 맞아도 아프지 않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듯하다. 그래서 눈은 차가운 것이지만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눈이 내려 쌓이면 하얀 빛으로 삼라만상을 덮어 가려 깨끗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연출한다. 이런 특성으로 눈은 사람들에게 거부감 대신 호감을 줄 뿐이다. 그래서 비와는 달리 눈은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게다가 눈은 우리 피부에 닿거나 온도가 영상으로 오르면 곧 녹아 물이 되어 사라지기에 아쉬움을 남긴다. 아득한 하늘에서 하얀 눈이 펄펄 날리거나 함박눈이 쏟아질 때는 흔히 온 사위가 어둑하고 적막한 풍광이 펼쳐진다. 그런 상황에서 눈은 아스라이 먼 곳에서 우리에게 다가오기에 자연스럽게 눈은 잊었던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눈을 천상에서 보낸 천사이기라도 한 듯, 또는 좋은 소식을 가져온 귀한 손님이기라도 한 듯, 반갑고 경건한 마음으로 맞는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눈은 한 송이 한 송이가 다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김광균, 〈설야〉 중에서]을 가져오는 메신저로 느껴지는 것이다.

눈은 찬 물상임에도 부드럽고 포근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실제로 눈은 쌓이면 가을보리를 덮어서 찬 바람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이불 같은 구실을 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눈은 우리의 감성을 풍성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순화시키는 다분히 정서적인 물상이다. 따라서 겨울이 있는 온대에 산다는 것은 그만큼 감성적으로 풍부한 삶을 사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매우 적은 양일지라도 눈이 오는 겨울을 가진 한반도의 주민들은 큰 행운을 누리고 사는 것이다. 감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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