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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 새해를 맞는 때

[이효성의 자연에세이] 새해를 맞는 때

기사승인 2022. 01. 0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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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우리는 달력에 따라 1월 1일을 기점으로 한 해를 새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레고리력이라는 특정한 달력에 의한 것이다. 그레고리력과 다른 역법과 문화를 가진 달력은 새해를 시작하는 날이 다 다르다. 예컨대 24절기라는 양력에서는 입춘일, 이란의 양력에서는 춘분일, 동양의 음력에서는 동지 후 두 번째 삭일, 이슬람 음력에서는 첫 번째 달인 ‘무하람’월의 1일(이날은 해에 따라 여름에서 겨울까지 사이에 있음), 이스라엘의 음력에서는 일곱 번째 달인 ‘티쉬리’월의 1일(이날은 양력 9월 중간쯤에 있음)이다.

새해를 맞기에는 어쩌면 한겨울보다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이 시작될 때가 좀 더 어울릴지 모른다. 따라서 이란력처럼 춘분일 혹은 이른 감이 있지만 24절기처럼 입춘일을 한 해의 시작일로 정하면 천문학적으로 의미도 있고 기후학적으로도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레고리력의 새해 첫날은 혹한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한 해를 시작하기에 알맞은 때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또 그날은 동지가 든 시점부터 9~10일 후로 천문학적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지도 않다.

그러나 이런 지적이 새해는 반드시 봄에, 그리고 천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날에 시작되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 그래야 하는 어떤 필연적인 까닭이 없다. 새해는 아무 계절, 아무 날, 아무 순간에 시작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시간은 연속되는 흐름일 뿐 거기에 어떤 시작과 끝이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계절의 시작과 끝도 마찬가지다. 계절이 일 년에 한 번 순환하는 것은 맞지만 거기에 계절의 시작과 끝이 언제부터 언제까지라고 정확하게 새겨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굳이 초, 분, 시를 단위로 하여 시간을 날, 달, 해, 4계, 24절기 등으로 나누고 그 길이 그리고 그 시작과 끝을 정하고 있다. 시간이나 계절을 나누는 것은 어느 정도 자연적인 면모도 있지만, 그 시작과 끝을 정한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편의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것이다. 날은 24시간을 단위로 계속 반복되고, 해는 일 년을 단위로 끊임없이 순환하기 때문에, 그 끝과 시작을 정해놓으면 여러 가지로 편리할 것이다. 한 해나 4계는 너무 길어서 해는 달로, 4계는 24절기로 세분할 필요도 생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일정한 시점에 하루를, 한 달을, 한 해를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 한 해는 365일 가운데 어느 날이든 새해의 시작일로 할 수 있지만 그레고리력은 한겨울에 오는 1월 1일로 정했다. 그래서 그레고리력을 쓰는 우리들은 해마다 1월 1일이면 새로 한 해를 시작하기 위해 새롭거나 경건한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많은 이들은 새해 아침에 새해가 보다 더 보람 있고 결실 있는 해가 되기를 기원하고 또 새해를 그렇게 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새해의 첫날이 있기 때문에 그런 기원과 노력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원단(元旦) 즉 새해 아침에 ‘새해의 소원’을 빌고, ‘새해의 다짐’을 한다. 어떤 이들은 추운 날씨에도 원단에 높은 산에 애써 오르거나 동해 바닷가로 가 새해의 첫 해를 맞이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의 소원을 빌거나 새해의 다짐을 하기도 한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24절기에서 새해 첫날로 치는 입춘일에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등의 새해의 복을 비는 입춘방을 대문에 붙이고,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는 열심히 잘 하겠다는 뜻으로 아홉 번씩 한다는 ‘아홉차리’라는 세시풍속이 있었다. 또 자신의 복을 바라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몰래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베푸는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의 풍속도 있었다.

이처럼 연초일을 정해놓으면 새해를 의미 있게 보내려는 매우 긍정적인 자세도 생기게 된다. 어떤 시점을 기회로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반성하고 일신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원단은 그것이 가장 어울리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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