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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 살을 에는 추위

[이효성의 자연에세이] 살을 에는 추위

기사승인 2022. 01. 1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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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한국의 1월은 연중 가장 추운 혹한의 시기다. 태양의 복사열이 가장 적은 때는 12월 21일경에 드는 동지 때이고 그 다음부터는 복사열이 조금씩 늘지만, 늦가을부터 계속 축적되어 온 한기가 지구를 더욱 식혀가는 데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삭풍도 더 거세지기에 1월경부터 혹한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때 북녘의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르면 영하 20도를 넘는, 살을 에고 뼛속조차 시린 추위를 만나게 된다. 김종서 장군의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긴 휘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라는 시조는 그런 추위 속에서 북방의 육진을 개척한 장군의 기개를 담고 있다.

한국의 한겨울 추위는 정말 만만치 않다. 지구 온난화 현상이 본격화하여 난동이 오기 전에는 더욱더 그랬다. 한강이 꽁꽁 얼어 그 위로 마차나 지프차가 지나다녔고 수십 센티미터가 넘는 두꺼운 얼음을 커다란 톱으로 잘라 여름에 쓰기 위해 저장했다. 한국 전쟁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한겨울 장면에는 병사들이 많은 눈과 혹한으로 악전고투하는 모습이 많다. 한국전에 참전한 중공군 병사들이 겨울 야간 전투에서 고지를 사수하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꽁꽁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생명체는 추위에 약하기에 혹한의 겨울은 시련의 계절이다. 혹한을 견디지 못하면 생명을 잃는다. 실제로 많은 생명체들이 혹한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혹한에 동사 등으로 적지 않은 이들이 생명을 부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겨울은 혹한을 피해 칩거하며 따뜻한 새봄을 기다리는 희망의 계절이기도 하다. 혹한을 피하면 조만간 꽃이 피고 활개를 칠 수 있는 따뜻한 봄이 온다. 그래서 만주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우리의 시인 이육사는 〈절정〉이라는 시에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고 노래했다.

혹한은 시련을 주지만 그만큼 생명체를 강인하게 만들어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켜 주기도 한다. 혹한은 또 해충이나 유해균을 박멸시켜 농작물의 병충해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혹한은 또 온대지역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도 기여한다. 여름의 더위를 견디기 위해 냉방 시스템이 발전하듯, 겨울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난방 시스템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몸을 따뜻하게 보호할 의류의 개발과 함께 추위를 막고 방을 데워줄 건축 기술, 설비, 재료, 도구 등이 발전한다. 온대지역에서 문명이 발달한 것은 이 때문이다.

혹한은 혹한이 아닌 때에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하는 이점도 한다. 혹한은 다양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가 화사한 눈꽃이다. 눈이 오면 눈꽃을 볼 수 있지만, 혹한에는 상고대가 내려 더 화사한 눈꽃을 볼 수 있게 된다. 특히 높은 산의 정상에 있는 나무들에는 상고대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눈꽃 위에 상고대가 내리면 눈꽃이 더욱 화사해진다. 해가 뜨면 바로 녹기에 오래가지는 않지만 그 어떤 실제의 꽃보다 더 화사하고 황홀한 눈꽃을 혹한에 감상할 수 있다.

혹한은 또 보통 때는 할 수 없는 많은 놀이를 가능하게 한다. 혹한에 눈이 오면 상당한 기간 동안 녹지 않기에 눈 위에 벌렁 드러누워 사진 찍기, 눈사람 만들기, 눈싸움 놀이, 눈썰매 타기, 스키나 스케이트보드 타기 등이 가능하게 된다. 혹한으로 얼음이 얼면 고드름 놀이, 얼음썰매 타기, 스케이트 타기 등의 얼음지치기가 가능하고, 꽁꽁 언 연못이나 호수에서 조그만 구멍을 내어 하는 낚시도 가능하다. 이들은 모두 한겨울 혹한 속에서 많은 눈이 내려 녹지 않을 때 그리고 물이 꽁꽁 얼어 있을 때만 가능한 놀이로 혹한의 보상이라 할 수 있다. 혹한으로 웅크리고 지내야 할 때 가장 활달한 야외 놀이가 가능한 것이다.

겨울은 혹한으로 생명을 위협하고 칩거하게 하지만 야외에서는 화사한 눈꽃을 선사하고 많은 눈과 두꺼운 얼음으로 즐거운 놀이를 가능하게 한다. 혹한에 대한 자연의 후한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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