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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3.0 김동관 손에]④승부사 DNA 보유한 父子… 각자 경영 스타일은?

[한화 3.0 김동관 손에]④승부사 DNA 보유한 父子… 각자 경영 스타일은?

기사승인 2020. 11.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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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회장 위기 때마다 투자 결단 M&A로 10대 그룹 편입 발판 다져
장남 김동관, 삼성과의 '빅딜' 주도 분산탄사업 분리, 친환경기업 부각
'디지털 혁신' 이끈 차남 전무 승진, 금융부문 조직체계 성과중심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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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헤엄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40년간 그룹을 이끌어오면서 몸소 보여준 경영스타일이다. 그의 좌우명처럼 김 회장은 그룹의 위기 때마다 굵직한 인수합병(M&A)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했고, 취임 당시인 1981년 매출 1조원이던 한화를 2019년에 71조원을 넘기며 65배 가까이 성장시켰다. 재계서 김 회장을 두고 M&A의 귀재, 승부사, 구조조정의 마술사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회장이 창업주인 故김종희 회장로부터 ‘돈 버는 자체가 목적이 되서는 안된다’는 기업인의 마인드와 추진력을 그대로 배웠다면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김동원 한화생명 전무, 김동선씨 등 세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승부사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평가다.

특히 김 사장의 경우 10년간 한화그룹에 몸 담으면서 독일 태양광 업체 큐셀 인수, 삼성 테크윈 등 굵직한 M&A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펼치며 한화의 성장을 도왔다. 태양광 사업은 오랫동안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투자를 계속해왔는데, 이는 향후 한화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려는 김 사장의 ‘뚝심’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공식 석상에 삼남인 동선씨가 김 회장과 모습을 드러내며 경영참여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내년 3월 김 회장의 복귀가 점쳐지고 있다. 만약 김 회장의 복귀가 사실화될 경우 세 아들은 7년만에 모두 한 자리에서 한화그룹을 이끌며 각자의 경영스타일을 펼치게 된다.

16일 한화그룹에 따르면 지난 9월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의 승진에 이어 둘째 김동원 한화생명 전무가 승진하면서 한화그룹의 3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내부에선 김 회장이 내년 2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에 따른 취업제한 제재가 풀린 이후인 3월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김 회장의 복귀와 함께 셋째인 동선씨가 경영에 합류한다면 김 회장과 세 아들은 약 7년만에 한화그룹을 이끌게 돼, 시장에선 부자간 경영 스타일이 더욱 회자되고 있다.

◇부자의 M&A 비결은 ‘과감한 결단력’
김 회장이 M&A의 귀재로 불리는 데는 협상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아서다. 취임 이듬해인 1982년, 현재 한화케미칼로 불리는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을 인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김 회장은 한양화학 인수시 PVC원료확보가 쉬워져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봤는데, 직원들의 반대가 거셌다. 두 회사 모두 적자인 데다가 전망 또한 불확실해서다. 그러나 그는 석유화학의 발전을 확신하고 인수에 나섰다. 당시 다우케미칼이 제시한 매각금액은 7000만달러. 김 회장이 가격이 높다며 계약을 미루자 다우케미칼은 본계약을 체결하지 않을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에 김 회장은 “명예를 욕되게 하면서 사업을 할 생각은 없다. 가계약은 어디까지나 가계약이 아닌가?”라는 답신을 보내 협상의 주도권을 쥐는데 성공했다. 이후 다우케미칼로부터 매각금액을 1000만달러를 깎고 분할상환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었다. 이는 한화가 10대 그룹에 편입할 수 있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99년 대한생명 2차 입찰 신청 마감 당시, 김 회장이 직접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 사무실을 찾아가 입찰 제안서를 낸 것도 유명한 일화다. 대한생명 인수 또한 계열사 사장단의 반대가 심했다. 이미 보험시장은 레드오션이었을 뿐 아니라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에도 부실 대출 등으로 결손금만 2조원이 넘었던 상황이었다. 시장에선 한화그룹이 부실한 금융사 인수로 망할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보험 사업은 아직 성장의 기회가 무궁무진하다며 “대한생명 인수는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며 인수를 결정했고 2002년말 인수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고용안정화와 무배당정책을 통해 누적손실을 완전히 해소하고 연간 이익 5000억원을 넘게 된다. 현재 한화생명은 국내 보험사 매출, 총자산에서 업계 2위를 차지하며 그룹 전체 매출 비중의 절반을 담당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 외에도 김 회장은 부실기업이던 정아그룹 명성콘도(현 한화호텔앤드리조트)를 인수해 글로벌 종합레저기업으로 키웠으며 한양유통, 동양백화점(현 한화갤러리아,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인수로 국내 최초 명품백화점 개점을 하는 등 뛰어난 안목으로 한화그룹의 다양한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며 위기 때 마다 성장 동력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2015년 삼성 방산과 유화부문 4개사의 빅딜에선 장남 김 사장의 물밑 작업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사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미국 하버드대 동문으로 가깝게 지내온 인연이 협상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김 사장은 앞서 한화큐셀 인수와 한화솔라원의 합병을 주도하며 한화의 태양광 사업을 이끌어왔는데, 이 또한 아버지의 뚝심있는 결단력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타고난 ‘체질개선 DNA’ 도 공통점
현재 김 사장의 나이는 38세로, 김 회장이 1991년 한국화약 보은공장을 준공하던 시기와 같다. 이듬해인 1992년은 김 회장이 한국화약이었던 사명을 한화로 바꾸며 화약 비중이 낮아지고 국제화 및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체질개선에 나선 때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창립 이래 가장 획기적이고 대대적인 CI개편을 통해 한화로 통일시키고, 그룹사보 제호도 ‘다이나마이트’에서 한화로 바꿔 이미지 쇄신을 시도했다.

김 사장의 최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 사장은 2010년 한화에 입사한 이후 태양광 사업을 추진하면서 최근 비인도적 무기로 평가받는 ‘분산탄 사업’을 분할시켰다. 글로벌 시장서 투자를 받기에 부정적 인식이 크다는 생각에서다. 김 사장은 ㈜한화 전략을 담당하면서 오랫동안 분산탄 사업을 분리하려는 작업을 해왔으며, 이를 통해 ‘친환경 기업’이라는 이미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김 사장이 지난 9월 사장으로 승진한 이후 가장 첫 행보도 ‘친환경’으로 시장의 눈길을 끌었다. 김 사장은 조현상 효성그룹 총괄사장의 지목으로 ‘플라워 버킷 챌린지’에 동참했는데 이를 통해 서울시청내 휴게 공간을 ‘친환경 플라워 아트월’로 탈바꿈시켰다. 실내 공기를 자연 정화시켜주면서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내세울 수 있어서다.

내부 관계자는 “김 사장이 승진 후 어떤 발언이나 행보가 없었는데, 이번 친환경 관련 행사에 있어선 대단히 신경을 썼다”고 전했다.

둘째 김 전무도 최근 승진에 성공하며 한화생명내 디지털 정책과 업무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다보스포럼, 보아오포럼 등 국제 행사에 참가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쌓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조직정비도 구축했다. 한화생명을 성과 중심 조직체계로 개편한데 이어 사회적 트렌드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빅데이터, 기술전략 등 조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모든 직원은 한 가족”…인간적 면모도
김 회장은 1997년 IMF 위기 당시를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고 회상한 바 있다. 살아남기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 주력사업이었던 기계와 에너지를 매각했다. 그는 한화에너지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주식과 금융자산, 집 등을 담보로 제공하고 경영권 포기 각서까지 썼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김 회장은 자신이 키운 기업이 헐값에 매각되지 않도록 협상했고, 구성원들의 고용승계를 약속했다. 김 회장은 기업매각과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에게 은수저 세트를 전달하며 “지난달 인연을 잊지말고 건강히 다시 만나자”고 전하면서 한화그룹의 ‘신용과 의리’ 문화를 몸소 보여줬다. 당시 직원들이 김 회장의 자진사퇴를 막겠다며 회사의 구조조정에 동참한 배경도 이같은 ‘신의(信義)’문화가 자리한다.

2014년, 2년만에 경영에 복귀한 김 회장은 첫 출장지로 이라크 신도시 산업장을 방문했다. 김 회장은 서울에서 광어회 600인분을 비행기로 공수해 사막에서 땀흘리는 직원들을 격려했다. 당시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에 동원된 인력은 한국인 644명. 직원들은 당시 가장 먹고싶은 음식으로 광어회를 얘기했는데, 김 회장이 직접 이를 공수해 전달해 직원들의 사기를 높였다고 전해진다.

재계 총수 중 ‘야구광’으로도 소문난 김 회장은 한화이글스가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했던 1999년, 유승안 전 감독의 부인이 급성 백혈병으로 입원하자 수술비를 지원했을 뿐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헌혈 운동까지 펼치며 투병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한 미국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게 되자 그 부인을 채용하는가 하면, 국내보다 미국에서 더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지원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는 채용을 약속했고, 그룹내 기러기 아빠들은 원하는 때에 부인과 자녀를 볼 수 있도록 휴가도 내줬다. 김 회장이 평소 ‘직원을 내 가족같이’생각한 부분이 잘 드러나는 일화다.

아버지의 인간적인 면모도 대를 이었다. 세 아들 모두 권위의식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사장은 승진한 후로, 부사장 시절 쓰던 사무실을 사장실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다. 승진 후 직원들에게 어떤 발언이나 주문없이 조용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서다. 사장 승진 후 공식 사진을 바꾸거나, 자리 이동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직원들의 질문에도 김 사장은 “굳이 그런 건 할 필요가 없다”며 마다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명한 유리로 된 그의 집무실 또한 문을 열어두고 있어 언제든 직원들과의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또한 평소 직원들의 대소사는 물론 직원 식당과 카페를 함께 쓰며 거리감을 두지 않는다. 그의 소탈한 성격이 전해지는 대목이다.

한편, 내년도 김 회장의 복귀에 이어 셋째 동선씨의 경영 참여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한화의 3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故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에 김 회장이 동선씨의 손을 잡고 나서는 모습이 포착되면서다. 이날 빈소에는 김 회장의 세 아들 모두 함께 찾았으나 김 회장이 공식석상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동선씨와 함께였다. 시장에선 최근 동선씨가 사모투자펀드운용사(PEF)인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에 사표를 제출한 이후 현재 그룹에 합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만약 동선씨가 그룹에 합류할 경우 한화건설 또는 호텔앤리조트 사업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이 지난 7년간 경영에 참여를 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승부사 기질과 적극적인 M&A로 그룹의 규모를 크게 키웠다”면서 “만약 김 회장이 복귀하게 된다면 취업제한 제재가 풀린 2월이 지난 3월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김동선씨의 경영 참여 가능성에 대해선 “전혀 얘기된 바 없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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